창립자

Daisaku Ikeda
Daisaku Ikeda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1928년 1월 2일 도쿄에서 탄생했습니다. 교육자, 철학자, 문필가, 평화 건설자이며, 인간교육・지적대화・평화 및 교류추진의 활동은 세계로부터 널리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재가불교단체 창가학회 인터내셔널(SGI)의 회장입니다.

이케다선생님은 인간적인 학생주체의 교육이 평화로운 생명존엄의 사회를 구축하는 기반이라는 신념에 근거하여 소카일관교육을 창립했습니다. 소카일관교육은 유치원에서 대학원에까지 이르고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폴, 홍콩, 한국에 유치원, 유치원에서 초・중학교 교육에 이르는 브라질 소카학원,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에 남녀공학의 초등학교 및 중학교・고등학교가 2개교, 소카대학, 소카여자단기대학, 미국소카대학이 있습니다.

또한, 보스턴 21세기센터, 동양철학연구소, 도다기념 국제평화연구소, 민주음악협회(예술을 통한 이문화 교류를 추진), 도쿄후지미술관 등 다수의 국제적 비영리 평화・문화기관의 창립자이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교육, 문화, 평화추진에 대한 공헌이 현창되어, 모스크바대학, 볼로냐대학, 베이징대학, 글래스고대학, 나이로비대학, 뉴욕시립대학, 델리대학, 요르단대학, 파나마대학, 시드니대학 등, 세계 40개국을 넘는 나라들의 고등학술기관으로부터 지금까지 230개를 넘는 명예박사호, 명예교수칭호를 수여했습니다. 또, 약 20개국으로부터 국가훈장, 유엔평화상, 사이먼비젠털 센터의 국제관용상, 로자팍스 인도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김 양식업을 경영하는 일가의 5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40년대, 이케다선생님은 젊은 10대의 청년이었습니다. 피부로 체험한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이 가져온 공포의 전율 등 이루다 말로 할수 없는 괴로움은 깊이 가슴에 새겨져, 그 후의 평화행동주의의 중심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대의 군국주의, 국가주의 교육의 영향력에 대한 통찰이 이케다선생님의 교육관의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일본의 군국정부에게 교육이란, 어린이들을 국가와 군사목적을 위해서 순종하는 하인을 만들기 위한 틀에 박힌 수단이었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은 교육에는 좋게도 나쁘게도 청소년의 시야와 전도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했습니다.

종전에 의해 일본의 사회와 가치관은 크게 변했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시중에 철저히 박힌 이상한 가치관이 기만이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 순신간에 무너졌다.」

이러한 때에 19세의 이케다선생님은 생애의 스승 도다조세이 선생님(1900-1958년)과 만났습니다. 도다선생님은 교육자, 불교 철학자이며, 군국주의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서 전시중에 투옥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케다선생님은 도다선생님의 정의의 불굴의 정신과 그 인간미 넘치는 인격과 깊은 견식에 탄복하여, 도다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일본 및 세계의 사람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진력해 갈 것을 결의했습니다.

유례없는 독서가이자, 남보다 향학심이 왕성했던 이케다선생님은 낮에는 도다선생님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며 면학에 면려했습니다. 그러나, 전후 일본경제의 저미에 의한 영향을 받아, 도다선생님의 사업이 파탄했습니다. 거의 모든 종업원이 곁을 떠나는 가운데, 이케다선생님 오로지 혼자만이 남아서, 도다선생님을 지키며, 회사의 재건에 분투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야학에 통학하는 것도 단념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도다선생님은 이케다선생님에게 만반에 걸친 대학레벨의 교육을 맨투맨으로 개인교수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도다선생님이 서거하시기까지 10년동안에 이릅니다. 유능한 교육자이셨던 도다선생님은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등의 인문사회과학에서부터 수학, 물리, 화학, 천문학 등의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폭넓은 과목에 걸쳐 혼신의 개인교수를 하셨습니다. 이케다선생님께서는「지금 나의 98%는 전부 은사로부터 배운 것입니다.」라며 「도다대학」이라고 불렸던 도다선생님의 개인수업의 추억을 말씀하십니다. 그 후 이케다선생님은 후지단기대학 (현 도쿄후지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958년 도다선생님이 서거하고, 그 뒤를 이은 이케다선생님은 평화와 인간의 행복추진을 위해 지구규모의 폭넓은 활동에 임해 오셨습니다. 그 중심은 국가, 민족, 종교,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은 폭넓은 대화의 실천이며, 세계의 문명간의 상호이해의 다리를 건너 지구규모의 제문제의 실행가능한 해결책의 모색을 지향한 인간주의자로서의 행동이었습니다. 민간의 인간외교를 통해 1970년대에 행한 활동에는 중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우호의 다리를 놓은 것과 중국과 소련의 정치적 긴장완화에 공헌한 것 입니다.

지금까지의 50년간 이케다선생님은 1600회에 걸친 정계, 교육계, 학술계, 과학계, 평화행동가, 실업계, 예술계의 수많은 식자와 정력적으로 대화를 전개하여, 그중에서 50권 이상의 대담집을 출판했습니다. 예를들면,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중국의 문호 김용, 평화학의 아버지인 노르웨이인 요한 갈퉁, 미국 미래학자인 헤이젤 핸더슨, 노벨 평화상 수상 과학자이며 평화활동가인 라이너스 폴링 및 조지프 로트블랫 등 입니다. 특히 토인비 박사와의 대담집『21세기로의 대화』는 27개국 언어로 번역, 출판되어 세계의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담집을 비롯해 이케다선생님은 지금까지 철학을 비롯한 평전적 수필, 아동문학 등 100권을 넘는 저작을 출판했습니다. 또한 저명한 시인이며, 세계예술문화 아카데미로부터 계관시인칭호(1981년), 세계시가협회로부터 세계계관시인상 (1995년), 세계민중시인칭호 (2007년)가 수여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해외의 저명한 고등교육기관으로부터의 요청에 응해 지금까지 모스크바대학, 베이징대학, 하버드대학 등 28개 대학, 학술기관에서 32회의 강연을 했습니다.

그 광범위한 활동 가운데 특히 이케다선생님은 「교육이 내 인생의 총 마무리의 사업이다」라는 신념에서 교육제언을 비롯한 각종 출판물을 통해 적극적으로 교육과 그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학생의 성장을 무엇보다 기뻐하며 학생의 격려에 힘을 쏟아 교육사업에 전혼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교육은 상호공생에의 자각과 모든 숭고한 생명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양성하고, 인간성을 함양하는 것이며, 또한 개개의 창조적 가능성을 개화시켜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개개인이 독자적인 공헌을 해 갈수 있도록 실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이케다선생님의 교육관이며, 그것이 바로 소카교육이 제시하는 비젼입니다.
선생님의 업적에 따라 「불교철학자」「평화추진자」「교육자」의 세가지 측면에서 소개.